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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햇살커

의외

El톄 2021. 4. 21. 19:52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첫번째로 할 일은 의문을 내뱉는 것이었다. 궁금증에 의하여 움직이는 고개도 여전했고. 왜냐하면 뒤이어 이어지는 너의 말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아직은 서로를 파악하기 이전인걸까? 그래도 저는 여전히 전보다 너를 알게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전에는 얼굴이라든가 이름 정도가 끝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보다 더 알게되었으니 당연히 잘 안 거 아닐까? 아직까지 저를 파악하지 못한 너에게는 아쉽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부모님도 저를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자주 표현하고는 하셨으니까. 생판 남이었던 너가 그러는 것도 당연한거지. 

 

너무 나한테 이상한 쪽으로만 잘 알고있는거 아니야? 이왕이면 장점을 알아둬야지. 하나도 없을 정도면 눈치꽝이네, 눈치꽝. ...그게뭐야. 청개구리야? 차라리 견디라는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네.

 

그래도 신기한 감은 없지않아 있었다.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하고 교류하는 경우는 손에 꼽았으니까. 그도 그럴것이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지금까지는 친구 없이도 잘 놀았기에 남들은 짧다고 말할 이 시간을 생각보다 길게 여겼다. 그러면서 너의 대해 알게된 것도 꽤 있었다. 저처럼 뻔뻔하고, 가끔 화도 자주 내는. 세보자면 다섯 손가락을 넘는 양이었겠지만 저는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저또한 너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말하기에는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확신의 문제였다.

 

그런가? 그럼 나중에 나한테도 똑같이 해도 돼. 쌤쌤이로 하면 되지. 그럼 나도 뭔가 알지 않을까 싶고. ...화를 내는거랑 투덜대는거랑 다른거야? 그럼 화내는 사람을 본 적 있어? 아니, 이 얘기를 그만두라니... 나는 궁금한거 많은데.

 

화를 내는-투덜거리는- 듯한 너의 모습에 이번에도 입을 꾸욱 다물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화낸다와 투덜거린다의 차이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것일지도 몰랐지만 우선적으로 누군가에게 화를 내 본적도, 화를 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거기서 거기일테니, 네가 아무리 다르다고 말해도 의문감에 눈을 데굴 굴릴뿐이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너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역시 궁금증이 커지면 그런것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왠지 모르게 투덜거리는 태도로 보이는 너를 보니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었으니 이제는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기에 일단 침묵을 우선적으로 하기로 하였다.

착각이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여기서 더 뭐라 할 말이 있을까. 변명할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무슨 말을 꺼내도 추궁될 게 뻔했다. 저는 과감하게 아무말이나 내뱉으면서 그거에 대한 수습은 미루는 편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속으로 착각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 말일까, 싶기도 했다. 여러모로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는 골치덩어리였다. 이런 것을 고치면 참 좋으련만 어릴적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에게 한 순간에 바꾸라고 하면 여전히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저는 굳이, 라는 말을 붙이면서까지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음, 나쁜 시선으로 나를 보는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엄청 좋은 시선도 아닌 것 같아. 가까웠다고? ... 신기하네, 그게 좋은 시선이었다니.

 

새로운 충격에 빠진 듯이 어벙벙한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까지 좋은 시선이라는 것에 한없이 의심이 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서는 자각이 있었기에 네가 싫어해도 별 수 없나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데 그 정반대라니. 놀라지 않을래야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운한 표정까지 눈에 들어오니 감히 기겁할 수 밖에. 의도치 않았지만 여러모로 드물게 다양하게 반응해버렸다. 사실, 제 입장에서 안 놀라는게 더욱 신기할정도.

 

남동생이라도 있어? 누가보면 언니라는 호칭을 처음 들어본 사람 같아. ...이름이야 알고있지. 지나가다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 언니야말로 내 이름을 알고 있어? ... 신연아인거 알아?

 

기뻐하는 너의 모습에 그래도 아까보다는 표정이 풀렸다. 저렇게 좋아하니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려오는 목소리 조차 왠지 평소랑 다르게 둥근것같아 저도 같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을 아냐고 물어달라는 것. 사실대로 말하자면 김이 다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저도 투덜거리고 싶은 충동에 절로 휩싸였다. 아니 그치만 제가 정말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래보여도 같은 학교 애들 이름을 어느정도는 외우고 있는 편이었다. 그것이 선배이든, 동갑이든, 후배이든. 오랫동안 기억에 담아두는 것이 아닐 뿐이었다. 그치만 상대방이 너라면 조금 달랐다. 그도 그럴것이 남들보다 화려한 외견을 가지고 있고, 조용하지 않은 사람이 눈에 보인다면 절로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거 아닐까? 아무튼, 변명 아닌 변명을 줄줄이 말한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저는 너의 이름을 충분히 알고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많이 불러야겠다는 다짐도 어느정도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건 억울하다기 보다는 허무감? 에 가까웠다.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7년 안이면 자신은 있어. 그거 은근 긴 시간이잖아. 그래도 걱정마. 너무 이상한 짓은 할 생각이 없어. 평생 놀려먹어질 흑역사는 나도 별로란 말이야. ...? 그래도 노력하는 쪽이 더 좋지 않아? 열정적인걸로 하자. 그게 좀 더 긍정적으로 보이잖아.

 

생각하던 반응이 아닌 것에 왜지? 라는 눈빛으로 너를 빤히 쳐다보았다. 소원이라는게,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고 한다고 해서 들어줄지도 의문이었다. 상대방이 차여리, 너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한 번 노력해본다는건 그래도 너에게 신경을 쓴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 2초 정도 고민하고 거절했을지도 모르지. 그치만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친해진 사람은 꽤나 오랜만이었다는 것이다. 이정도 성의를 안 해볼 이유도 없었다. 내기에 할 이유도 없었지만, 거절할 이유도 막상 찾아보면 없었다. 이 우수운 약속을 지키는 건 어느정도 너와 친근하니 수락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신연아 인생 중 장족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뭐랄까, 표정 근육이 막 움직이고 있지않아? 눈썹이 올라간다든가 입꼬리가 위아래로 많이 올라가는것 말이야. 뭐, 다양한 표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물론 조커게임 같은거 할때는 불리할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한 감상이었다. 제 입장에서 너의 표정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않게 표정이 다양했다. 아직까지 웃는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렇지 그 감정이 담긴 표정이 어느정도 유추가 되었으니까. 그것이 긍정적이지 못한 표정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찌보면 그것도 능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것도 제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평소에 표정이 비슷비슷하던 소리를 밥 먹듯이 들었던 저와 비교했기에 너는 충분히 다양한 사람이었다. 

저를 향해 따라오는 듯한 시선에 제가 들고있던 책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네가 신경쓴다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그러나 저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제 책도 아니었고, 그냥 우연히 눈에 보이길래 건넨 것이었다. 물론 이 책에 대해 차디 찬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지만.-오히려 열불 내는 상황이 더 먼저 떠올랐기에- 어쨌든 그런 반응을 보였던 사람이니 저렇게 보이니 싱숭생숭한 마음이 아주 작게 들었다. 그렇게 신경쓰이나? 사물을 본 것만으로도 여러 감정을 보이는 너의 모습에 여상스럽게도, 그리고 다시 한 번 신기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무엇보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였을때야말로. 그 확신은 커졌다. 역시 표정이 다양하네. 새로운 것에 놀랄 것도 없이 이번에는 예상했다. 신기한 건 신기한 것대로. 예상은 예상대로.

그치만 유일하게 예상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너가 정말로 책에게 사과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계속 투덜거린다든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니 당연히 안 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웬만해서 제 예상에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던 너였기에 이번에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당황보다는 이 또한 신기함이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저에게 있어 여전히 신기한 사람으로 자리 잡혔다. 쥐고 있는 책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사과를 받았으니, 책도 화해할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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