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커뮤/햇살커

결국에는

El톄 2021. 4. 21. 19:53

자고로 저는 굳이 말을 덧붙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말을 내뱉는 사람도 아니었고. 한마디로 입을 열어 말을 꺼내는 것을 참으로 귀찮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계속 닫고있었던 것이다. 불필요한 말에 대해서는 말이다. 생각하는 걸로 족했다. 그리고 그걸 너 또한 넘어갈 줄 알고 있었다. 제가 본 너는 답답한 것은 참으로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그 또한 불필요한 것에는 크게 상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의 이어지는 말에 눈을 깜빡이며 너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없다고 해서 그거에 대해 물을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이 있던 적도 없었고.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더욱 바라본 것도 없지 않아 싶었다. 원래 그라면 잘 하지도 않았을 것 같은 짓을 한 거라고 생각하였기에.

 

내가 그랬다고? ... 그런가.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내가 봐 온 나는 나름대로 성실하고, 착하고, 어느정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였단 말이야. 맨날 같다고 내 표정이? 말도 안돼.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표정을 짓고 있었는걸. (...) 눈치... 알았어, 취소해줄게. 그래도 장점이 생기면 빨리 말해주는 쪽이 좋은걸. 그래야 이해할 수 있는걸. 최소한 너무 눈치가 없지는 않은걸.

 

사실 이건 단순한 장난이나, 놀림에 불과했다. 유교사상에 어릴적부터 베어있던 자신이 아무리 저랑 같은 어린이라고 해도 경험의 차이라는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가끔가다 이해 못할 행동을 하는 너였지만 그래도 그게 싫지는 않았다. 게다가 눈치없다느니, 하면서 놀리기는 했었지만 너가 제 눈치를 가끔씩 보고있다는걸 알고있었다. 이걸 보면 눈치가 없다고 말한 것은 충분히 장난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거였다면 이렇게 놀리는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척 남겨뒀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대로. 저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도 어느정도 제 성격을 알고있는 너인데 그럴리가. 저는 좋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칭찬이라든지, 너에 대해 장점을 나열하는 것에는 재능이 없었다. 원래 그렇게 살아온 것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태어나서부터 그런 거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런 것을 못한다고 해서 다른 것도 못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칭찬 대신 장난스러운 말을 꺼내는 것이 다였다. 너에게는 저와 어울려주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뱉은 말이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눈을 느릿하게 깜빡여보였다. 아무 생각이 없을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하고있던 일을 굳이 말하자면 너를 그저 쳐다보는 것이었지만. 저보다 표정이 다양한 너를 보는 것은 꽤나 재밌는 일이었다. 당연하지만 너는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계속 비밀로 할 생각이다. 분명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여기서 더 투덜거리거나 화낼테니 말이다. 이건 너가 무슨 생각에 빠져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너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면 거기에 이상한 말을 덧붙였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모르는게 더 나은게 맞는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생각없는 흐름을 따르면 종잡을 수 없었다. 복잡한 네 머리속과 달리 제 머리속은 텅이었고.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도 까먹었을지도 모른다-정말 그런건 아니지만-.

 

늘 말하지만 내가 뭐 어때서? 바보라니... 이래보여도 그렇게 바보 아니야. 그런데 왜 그렇게 화 내는건데? ...대충 넘긴다랑, 안 넘긴다의 구분이 뭔데? 

 

인간관계는 늘 어렵다는 것을 오늘도 떠올리게 되었다. 언성을 높이는 목소리가 귀에 지긋이 들어왔다. 왜 짜증이 난건지에 대해 이해가 되지않았다. 서툴렀기에 너에 대해 왜 화를 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풀어주는 것보다 더 먼저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너를 저의 기준에서는 꽤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럴때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안절부절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도 충분히 그러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궁금했다. 왜 화를 낸 것일까? 이번에도 제 말 실수라면 이제는 사과를 하기로 했다. 제가 한두번이면 괜찮아도 반복하면 상대도 떨어져 나갈테니까.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막지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붙잡지 않을 것도 없었다. 일단 차분히 이어지는 너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뭐, 그냥. 화낸다를 화낸다라고 하는걸. 앞으로 칭찬을 많이 해주는 줄 알았는데 나쁜말이 더 많은 것 같아. 평소에 부모님한테도 이런 말 자주 안 들었는데...

 

너에게 투덜거린다는 둥, 화를 낸다는 둥, 등등등... 그런 말을 해왔었는데 이번에 제가 투덜거리는 날이 올 줄 은 몰랐다. 놀랍게도. 어쩌면 이게 화일지도 모르지. 그치만 왠지 저는 투덜거린다는 표현을 써야할 것만 같았다. 이게 네가 그렇게 말하던 차이점인걸가? 투덜거림은 투덜거림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까까지 화를 냈다고 말한 너에게 또다시 아냐, 너는 투덜거리고 있던거야. 라고 말할 생각은 그래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너였으니까. 너와 저는 어리기는 했어도 어느정도의 구분은 잘 할 줄 아는 사람인걸 알았다. 이건 그냥이 아니라 너를 아주 잠깐, 찰나였지만 그 시간 동안 보았기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저를 보며 아무말도 꺼내지 않는 것에 의문만이 들었다. 아까까지는 아무말이라도 해 본 사람이 정작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쩌라는걸까. 당연하지만 이번 것은 투덜거림이 아니었다. 그저 의구심이었지. 너랑 함께 있을때면 참 오락가락해지는 것 같았다. 너를 파악했을 법하면, 그게 또 어려워졌다. 친구란 왜이리 어려운 존재일까? 그치만 노력하지 않기에는 많이 아쉬운 관계였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많은 길을 걸어버렸다. 저에게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참 몰랐지만 이 사실 하나는 잘 알았다. 이미 친구의 존재를 알아버렸기에 그런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맨날 나만 보면 그리 좋은 시선은 아니었잖아. 그치만 날 싫어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고. ...? 허무한 감정이 드는건 또 신가히네. 내 시점으로 별 볼게 없을거야. 그도 그럴것이 너가 너를 보는거잖아. 별 차이 없을거라 생각해.

 

이번에도 그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사실이긴 했다. 정말 저는 너가 저를 그리 좋은 존재라고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저 또한 너에게 좋은 말을 해준적이 없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웃어준 적도 없었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빠르게 알았기에 자기객관화도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너가 이후로 어떤 태도로 나오든 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원래 그걸 바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가 다음날 180도로 바뀐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저는 기겁을 하며 너를 하루종일 도망칠지도 몰랐다. 그리고 뭐 '잘 못 먹었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나? 나야 뭐. 평범하지. 남들 보는 것과 비슷하게.

 

너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남들이 너를 보는 것처럼, 저도 비슷하게. 이 정도는 자부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친구란 감정은 그런거 아닐까? 이건 매우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니 대답에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제 기준일지도 이건 제가 자부할 수 있었다.

 

없었다고? 신기하네. 나는 생각보다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어. 물론 동생이 있는줄은 몰랐지마. 뭐 어쨌든, 이로서 내가 바보라는건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지 않아? 이름도 알고있고. 그치만 예상은 했어. 남의 이름 외우는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란 것 쯤은 나도 잘 알고있으니까.

 

미안하다는 네 말에는 그리 별 생각이 들지않았다. 그렇기에 손사래를 하는 것으로 그쳤다. 저또한 저 입장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너의 경우에는 정말 우연이었고, 타이밍이 좋았을 뿐이다. 저도 원래는 남들에게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않기에 이름은 고사하고 얼굴도 잘 몰랐으니까. 그렇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생색이라도 내자는 마음이 깊었다. 그치만 저렇게 미안해 하는걸 보니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심란해지는 것 같았다. 그정도로 미안해 할 필요는 없을텐데. 평소 네 성격을 생각해서 이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하니, 저는 무슨 말을 뱉어야할까 고민했다. 그치만 저는 언제나 그렇듯 생각이 오래 가지않았다. 그렇다, 그저 침묵이 답이었다. 역시 굳이 말을 덧붙이는건 제 성격에 맞지않았다.

 

믿는건 자유야. 나도 될지 안될지는 여전히 모르거든. 그래도 나를 믿기에 그냥 거는거야. 내가? 남에게 말할게 뭐있어. 그것도 은근 귀찮은 일일걸. 우선 흑역사가 안 남는게 내 나름대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은 하고있지만. 

 

제 생각을 아주 잘 알고있는 너였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알릴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그런 생각 조차 하고있지도 않았다. 아마 너가 흑역사라는 것을 알리라고 했어도 불필요하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너가 그런 제안을 했을리는 전혀 없겠지만. 추측에 불구했지만 지금까지의 너를 보아서는 확신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아무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들려오는 너의 칭찬에 눈을 깜박여보였다. 사람이 왜 당근과 채찍에 길들여지는지 절실히 알게되는 것이었다. 너에게 듣는 칭찬은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역시 칭찬은 누구에게나 듣든 좋은것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좋은 말을 그리 해준적이 없는 너에게서 들으니 더욱 그랬다. 그래서 조금 고민을 하다가 고마워, 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에게 들렸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 상관할게 아니었다. 들렸든 아니었든 저에게는 전한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주었지만... 사실 저는 어느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네가 정말 조커게임을 한다면 절대로 포커페이스가 되지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겨우 참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빵 터지겠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절로 상상이 갔다. 사람 상상력이라는게 참 대단했다. 그래도 나중에 너와 함께 조커게임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카드를 뽑았는지도, 무슨 카드가 남았는지도 손쉽게 알 수 있을 상대였지만 그게 친구인 너인데 어떻게 재미가 없을까. 나중에 집에 돌아간다면 부모님과 함께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다 드러난다고 해서 봐 줄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 연습이었다.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은 나름대로 신기했다. 왜 저러는 걸까, 하는 또 엉뚱한 상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고있었다, 사실. 제가 이 책에다가 왜 사과를 시켰을까, 하는 그런거겠지. 저는 독심술 같은걸 쓸 줄은 몰랐지만 눈치 하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기에. 그치만 그거에 대해 대답해 줄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그냥 이유없이 시켜봤어' 같은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리가 없었다. 분명 그거에 극대노할 너를 잘 알기에 입을 꾹 다문 것이었다. 그치만 하나 간과하고 있다면 저는 너의 입을 보았다. 눈을 보지않았기에 누구에게 사과하는지는 몰랐다. 여러모로 바보와 천재의 한 장 차이랑 비슷하게 말할 수 있었다. 참으로 우수운 일 아닌가 싶었다.

 

'커뮤 > 햇살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햇살커 러타  (0) 2021.04.21
의외  (0) 2021.04.21
뻔뻔한 것은,  (0) 2021.04.2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